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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 조선시대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남원 광한루」는 조선 초기 명재상 황희(黃喜, 1363~1452)가 남원에 유배되어 세운 광통루(廣通褸)가 기원으로, 주변의 호수 및 3개의 섬(봉래, 방장, 영주)과 오작교 일대는 전라도 관찰사 송강 정철(鄭澈, 1536~1593)과 남원부사 장의국에 의해 축조되었다.
이후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소실되었다가, 1626년(인조 4)에 남원부사 신감(申鑑, 1570~1631)이 지금과 같은 규모로 중건(重建)한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으나 상량문, 기문, 읍지 및 근현대 신문기사 등에 관련 기록이 명확히 있고 큰 변화 없이 약 400년의 역사를 유지해 왔으며, 지역 공동체의 지속적인 참여와 노력이 축적된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높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관영 누각으로써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관리와 선비들이 교류하며 시문을 창작하는 장소로써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많은 문인들에게 영감을 주어, 시문학뿐만이 아니라 소설 ‘춘향전’의 배경이 되는 등 문화사적인 가치가 탁월하다.
「남원 광한루」는 본루와 익루(요선각), 월랑으로 구성된 대형 누각으로 본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 팔작지붕 형태이며, 가구는 실내공간을 넓게 쓰기 위하여 3중보의 7량가로 되어 있다. 공포는 1출목 이익공식으로 다포식 공포와 같은 앙서형의 익공과 초각을 가진 첨차를 사용하고, 용과 거북이 등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익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 5량가 팔작지붕으로 가운데에는 온돌방이 설치되어 있으며, 공포는 초익공으로 외단과 내단은 초각을 하고, 첨차 아래에는 청룡과 황룡을 새겨 넣었다. 특히 덧도리 위에 기둥과 같은 대공을 놓고, 경사가 급한 덧서까래를 설치한 것은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구조이다.
월랑은 정면 1칸, 측면 3칸, 팔작지붕으로 본루에 오르는 계단 역할을 하고, 본루가 뒤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1881년(고종 18)에 건립된 것으로 공포는 이익공으로 귀한대 위에는 화려하게 조각된 용머리가 설치되어 있다.
「남원 광한루」는 조선 후기 목조건축의 특징인 화려한 장식과 함께 익루의 온돌, 월랑의 계단 등 실용적 요소가 결합된 목조건축유산으로 건축사적인 가치와 함께 광한루원의 정원유적과 어우러져 빼어난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국가유산청 원문 ↗ · 2026-09-15 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