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 담던 통은 없어졌다. 남은 돌의 구멍이 측우기를 가리킨다
땅이 얼마나 젖었는지만으로 비의 양을 헤아리던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조선에서는 빗물을 통에 받아 강우량을 쟀고, 이 돌은 그 통을 받치는 데 쓰였어요. 사라진 측정 기구의 자리를 돌의 구조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소중합니다.
더 알아보기
강우량을 재던 도구의 받침
측우기를 얹어 비의 양을 측정하던 화강암 받침입니다. 지금은 통이 없어지고 받침만 전합니다. 세종 때 측우기를 만들고 1442년 전국에서 비의 양을 재기 시작한 역사와 연결됩니다.
가운데 뚫린 둥근 자리
높이는 87.6㎝입니다. 윗면 중앙에 지름 16.5㎝, 깊이 4.7㎝의 원형 구멍을 마련했습니다. 통을 세웠던 자리가 돌에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학교에서 기상박물관으로
서울 매동초등학교에 있던 받침은 이후 자리를 옮겨 국립기상박물관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측우기 본체를 잃은 뒤에도 관측 도구의 실물 흔적을 전합니다.
새겨진 연대가 없어 남은 물음
조선 초기 작품으로 추정하지만 제작 시기를 새긴 글이 없어 정확한 연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1828~1830년 제작한 『동궐도』 속 측우대와 모양이 비슷하다는 점도 시기를 짐작하는 근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