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자리가 답답하다는 네 줄의 시, 왕위에 오르기 전 효종이 쓰다
동생 인평대군의 집 뒤 작은 샘에서 지은 글은 세자로 책봉될 무렵인 16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두 형제는 뒤에도 시를 주고받았어요. 이 시를 나라를 맡을 책임과 동생의 풍류 사이에서 느낀 마음으로 읽는 해석도 있습니다. 힘찬 글씨 너머 효종의 문학관을 살필 수 있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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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지어 직접 쓴 칠언시
효종이 지은 칠언시를 종이에 직접 적어 족자로 꾸민 작품입니다. 글 끝에는 머물던 곳 뒤의 작은 샘터에서 썼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먹글씨와 비단 제목
행서와 초서를 섞어 자신 있게 쓴 글씨 위에 황색 마름무늬 비단을 붙였습니다. 비단에는 효종의 진필임을 알리는 제목이 있습니다.
큰 화면에 남은 어필
효종의 편지나 작은 글씨, 목판에 옮긴 필적도 전하지만 이 작품은 알려진 먹글씨 가운데 크기가 가장 큽니다. 글씨의 크기뿐 아니라 자유로운 행초의 표현에서도 대표적인 어필로 평가됩니다.
인평대군 집 뒤 작은 샘에서
『열성어제』와 『송계집』의 기록을 통해 1645년 세자 책봉 무렵 인평대군 집에서 짓고 쓴 시로 확인됩니다. 효종은 즉위한 뒤에도 동생 인평대군과 시를 주고받았습니다. 높은 지위의 구속을 읊은 구절은 책임의 무게와 동생을 향한 부러움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연혁
- 1645년
- 세자로 책봉될 무렵 인평대군 집에서 시를 짓고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