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장에 적힌 옛 이름, ‘교지’가 되기 전의 ‘왕지’
문서의 제목과 관직명은 나라의 제도가 바뀐 시간을 품습니다. 1414년 안성을 강원도 도관찰출척사로 임명한 이 문서에는, 뒤에 사라지는 직무 이름까지 길게 적혔어요. 후대의 규정에 맞춘 문서와 대조하면 조선 초기 인사 행정이 달라지는 과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더 알아보기
태종이 안성에게 내린 사령장
1414년 4월 22일 태종은 안성을 강원도 도관찰출척사로 임명했습니다. 글은 흘려 쓰는 초서체로 일곱 줄에 걸쳐 적었고, 날짜 위에는 ‘조선국왕지인’이라는 도장을 찍었어요.
명나라 사행 뒤 받은 임명
안성은 고려 때인 1380년에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조선에서 1393년 청백리로 뽑혔고, 1411년에는 정조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이 왕지는 그 뒤 강원도 관직을 맡길 때 발급한 것이에요.
초기 문서가 간직한 옛 질서
작성 시기가 이른 데다 후대의 규정과 다른 표현이 남아 있습니다. 문서의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조선 초기의 관직 제도를 확인할 수 있어요.
문서에 남은 제도 변화의 경계
1435년 이전 임명 문서에는 ‘왕지’라는 이름이 보입니다. 뒤에 『경국대전』의 규정이 자리 잡으면서 고신교지라는 명칭을 쓰게 돼요. 도관찰출척사도 1466년부터 관찰사로 바뀌었으며, 여러 겸직을 나열한 문구는 1423년부터 적지 않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