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받침 위 가볍게 들린 처마, 들판에 남은 신라 석탑
절의 건물은 사라졌어도 돌을 쌓고 다듬은 방식은 남았습니다. 기단과 몸체의 비례, 지붕받침의 수가 시대를 가늠하는 단서가 돼요. 해체 수리의 기록은 겉모습에서 알 수 없는 조사 결과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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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공사 옛터라는 전승
이곳은 법흥왕이 불도를 닦았다는 애공사 터로 전해지기도 합니다. 다만 이 전승만으로 사찰의 정체가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단의 기단과 세 층의 탑신
두 단의 받침 위에 세 층의 탑신을 올렸습니다. 아래쪽은 상대적으로 무거운 비례인 반면 지붕의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 경쾌한 곡선을 이룹니다. 지붕돌 아래 네 단의 받침 등은 9세기 무렵의 특징입니다.
1973년 해체 수리의 기록
1973년에 탑을 해체하여 수리했으나 사리장치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조사에서 확인한 사실과 탑의 형식을 함께 살필 수 있습니다.
연혁
- 1973년
- 탑을 해체하여 수리했으나 사리장치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